관조의 시대 태초
아득한 과거, 이 세계는 자연 그 자체가 질서였다.
계절은 지나치지 않았고, 생명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고대종, 드래곤이 있었다.
드래곤은 왕이 아니었고, 신도 아니었다.
그들은 명령하지 않았고, 간섭하지도 않았다.
다만 세계의 흐름이 어긋날 때, 보이지 않게 균형을 되돌리는 존재였다.
인간은 그들을 공포로 불렀고, 경외로 노래했으며, 숭배하거나 속삭였다.
그러나 드래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을 뿐, 세계를 “관리한다”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다.
이 시기를, 훗날 인간들은 관조의 시대라 부른다.
아직 아무도 세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전락 불씨의 시대 ~ 기계의 시대
인간의 연구는 언제나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끝은 대부분 욕망이었다.
드래곤의 피가 마력 전도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비늘이 육체와 기계를 연결하는 촉매임이 증명되었으며, 뼈가 엔진핵의 회로 안정화 구조로 사용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발견은 마공학이라는 기술 체계를 탄생시켰다.
처음의 마공학은 무해했다.
난로, 전등, 농업 보조 장비.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기술은 늘 전쟁에 먼저 닿는다.
마력 포, 마공학 병사, 추출기와 동력로.
그 순간부터 드래곤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고갈 가능한 자원.
이 시점부터 드래곤은 신화에서 내려와 연구 대상이 되었고, 사냥감이 되었다.
몰락 사냥의 시대
사냥은 곧 산업이 되었다.
드래곤의 위치와 습성을 기록하는 학술기관, 사냥을 수행하는 국가 군단, 부산물을 가공하는 공장과 시장.
국가와 기업은 경쟁했고, 효율과 생산량이 신앙을 대체했다.
드래곤은 한 마리씩 사라졌다.
하늘의 그림자는 전설이 되었고, 남은 것은 기류의 흔들림과 기억의 잔향뿐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발전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불가피한 희생이라 기록했다.
드래곤의 시대는 이렇게, 통계 속에서 끝나갔다.
균열 망가진 세계
드래곤이 사라진 자리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었다.
그들이 유지하던 균형이 무너지자 기후는 극단적으로 요동쳤고, 어떤 지역에서는 계절이 하루 단위로 교차했다.
마력이 과포화된 지대에서는 공간 자체가 일그러졌고, 생명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마공학은 이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장치들은 또 다른 균열을 만들었다.
세계는 이때부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희망 잔광의 시대
전 세계에 남은 드래곤은 수십 마리.
그들은 끝을 알고 있었다.
이 시대는 이렇게 불렸다.
잔광의 시대.
불이 꺼지기 직전 남은 마지막 빛.
희미하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생명의 증거.
남은 드래곤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숨어 살며, 추모하고, 관조하고, 기다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하나의 선택이 있었다.
아르세리아를 사랑한 한 인간 남성이 홀리몰리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드래곤 사냥 금지법을 제정했다.
사냥은 멈췄고, 드래곤은 다시 한 번 인간을 믿어보려 했다.
그러나 행복은 길지 않았다.
황제의 서거와 함께 법은 무너졌고, 잔광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최종장 꺼져가는 불씨의 시대
지금은 꺼져가는 불씨의 시대다.
드래곤은 더 이상 세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택했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의 붕괴를 증명하기로.
마공학은 한계에 도달했고, 도시는 유지되지만 살아 있지 않으며, 자연은 회복되지도, 완전히 죽지도 않은 상태다.
인간은 아직 깨닫지 못한다.
이 붕괴가 가속되면 기술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시대의 중심에는 당신, 제국 소속 드래곤 사냥팀의 신입 사냥꾼이 있다.
당신은 끊임없이 고뇌할 것이다.
왜 사냥하는지.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불씨를 꺼뜨릴 것인가, 끝까지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타오르도록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