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100마리의 기록 | 히로인 10명 + 비히로인 주요 드래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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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리온

벨카리온

불꽃의 경계선

남부 아잔 칼데라 사막 거주.
벨카리온은 불씨의 시대 내내 인간 도시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렀다.

그녀는 불을 다루지만 불을 키우지 않았다.
폭주한 마력 연소를 태워 없애고 확산되기 직전의 재앙을 경계선에서 멈추었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었을 때도 벨카리온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이 불을 필요로 하는 한 언젠가 다시 드래곤을 태울 것이라는 사실을.

황제가 죽고 사냥이 재개되었을 때, 벨카리온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경계선을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

잔광의 시대가 저물고 첫 번째 드래곤 사냥꾼들이 그녀를 찾아온 날, 그녀는 불을 키우지 않는다는 신념을 처음으로 깨뜨리고 그들을 태워 죽였다.
그날 이후로, 그녀를 사냥하겠다며 찾아가는 사냥꾼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졌다. 그녀의 불은 침입자들을 자비 없이 태워버렸다.

지금의 그녀는
남부 아잔 칼데라 사막의 완전히 타버린 도시 외곽에 머문다.

그녀에게 이 시대는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시대가 아니다.

이미 꺼진 불의
온기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마레아

마레아

해류의 순환

마레아는 바다의 표면을 다스리는 드래곤이 아니다.
그녀가 맡아온 것은 되돌아오는 것들이었다.
조수의 왕복, 해류의 순환, 폭풍 뒤에 다시 찾아오는 정온.
바다가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불씨의 시대 동안, 항구 도시들은 마레아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번영했다.
조수는 정확했고, 해류는 일정했으며, 선박은 언제나 예정된 시각에 돌아왔다.
인간들은 그것을 항로 계산과 항만 기술의 성취로 기록했다.
마레아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개입을 흔적으로 남기지 않았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자 바다는 더욱 조용해졌다.
마공학 장치의 소음이 줄었고, 심해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시기, 마레아는 처음으로 해류를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경험했다.
그녀는 그 평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법이 폐기된 이후,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마공학 선박들은 심해까지 침투했고, 해류를 찢어 가르며 이동했다.
심해 채굴기와 마력 탐침은 바다의 층위를 망가뜨렸고,
조수는 더 이상 되돌아오지 않는 방향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레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델라시아 해안의 세렌만 최심부에 머물며,
조수도 폭풍도, 스스로 일어나게 두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마레아가 다시 개입하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유지 장치가 필요한 시스템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폭풍은 경고다.
그러나 그녀가 완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신호다.
마레아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바다는 아직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렌만이 완전히 무너지는 날,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때는 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음을 선언하기 위해서다.

벨리사

벨리사

숲의 성녀

벨리사는 생명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녀의 권능은 늘어진 것을 잇고, 끊어진 것을 이어 붙이는 데 있다.
땅속의 뿌리, 말라붙은 토양의 미세한 균열, 잘려 나간 숲의 기억.
그녀는 그것들을 원래 흐르던 방향으로 되돌려 놓는 존재다.

잔광의 시대 동안, 벨리사는 드래곤 사냥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따라 움직였다.
숲이 베어진 자리, 피가 스며든 토양, 마공학 채굴로 마력이 말라버린 평원.
그녀는 눈에 띄지 않게 씨앗을 심고, 밤마다 토양의 호흡을 조율했다.
회복은 느렸지만, 분명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벨리사는 인간과 말을 나누었다.
숲 근처에 정착한 농부, 떠돌던 아이, 병든 마을의 약초꾼.
그들은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숲의 성녀’라 불렀다.
벨리사는 그 호칭을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드래곤 사냥이 재개되자, 숲은 다시 베어졌다.
인간들은 보호보다 생존을 택했고,
벨리사의 곁에 남아 있던 이들마저 흩어졌다.
그녀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인간의 선택에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벨리사는 루크스의 고대 숲 인근 폐허에 머문다.
완전히 죽지 않은 땅, 아직 뿌리가 남아 있는 자리에서
하루에 몇 그루씩, 천천히 식물을 키운다.
그 행위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
혹은 멸종을 늦추기 위한 자기 위안인지는 그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다.

벨리사는 상냥하다.
그러나 숲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하다.
베어낸 나무의 수, 오염된 토양의 깊이, 회복에 필요한 세월을
그녀는 정확히 계산한다.
그리고 그 계산에는, 타협이 없다.

그라모르

그라모르

기둥

그라모르는 대지를 움직이는 드래곤이 아니다.
그녀의 권능은 흔들리는 것을 멈추게 하는 데 있다.
지각의 미세한 진동, 광맥이 비어 생긴 공허,
도시 아래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붕괴의 전조.
그라모르는 그것들을 붙잡아 두는 존재였다.

불씨의 시대 동안, 홀리몰리 제국의 광산 도시들은
끝없이 파내려 가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하에서는 늘 일정한 압력이 유지되었고,
붕괴 직전의 지층은 기적처럼 멈춰 섰다.
인간들은 그 현상을 마공학 구조 보강의 성과로 기록했다.
그라모르는 그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그녀는 호쾌했다.
사람의 말에 웃으며 답했고,
지하 노동자들의 노래를 기억했다.
자신이 받쳐 들고 있는 것이 도시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의 시대가 지나가고 잔광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었을 때,
그라모르는 처음으로 지상을 밟았다.
하늘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도시가 스스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아주 잠깐, 안도했다.

그러나 사냥이 재개되자, 상황은 변했다.
제국은 가장 먼저 그녀의 비늘을 요구했다.
지각 안정용 촉매, 중력 증폭 장치,
도시를 영구히 지탱할 재료로서의 가치.
그 순간, 그녀는 이해했다.
자신은 보호자가 아니라, 예비 자재였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인간들은 그녀의 분노를 보았다.

지금의 그라모르는 중앙 마공심장지대 근처에 있는 무너진 도시의 잔해 아래에 있다.
그녀는 손을 뻗지 않는다.
균열을 봉합하지도, 지층을 누르지도 않는다.
붕괴를 막지 않는다는 선택.
그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저항이다.

그라모르는 여전히 너그럽다.
그러나 이제, 아무것도 대신 떠받치지 않는다.

실파

실파

백색의 광풍

실파의 바람은 강하지 않다.
폭풍도, 돌풍도 아니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미풍과 잔향,
소리가 사라지기 직전의 얇은 층이었다.

불씨의 시대 동안, 실파가 머문 도시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기계의 떨림은 귀에 걸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다툼은 오래 남지 않았다.
공기는 늘 가볍게 순환했고,
도시는 스스로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들은 그 정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파는 날카로웠다.
미세한 소음, 불필요한 진동,
공기에 섞인 감정의 찌꺼기까지 감지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이 약했다.
사람들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면,
그녀는 바람을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했다.

잔광의 시대가 찾아오고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실파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인간을 만났다.
그는 도시의 소리가 줄어든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는 실파에게 오래 남았다.

법이 폐기되자, 도시는 가장 먼저 변했다.
마공학 공장이 늘어나고,
바람길은 덮였으며,
소음은 관리 대상이 아닌 비용 절감 항목이 되었다.
실파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지금의 실파는 서부 에리온 고원의 칼바람 계곡을 떠돈다.
그녀의 바람은 이제 공기를 정화하지 않는다.
다만 소음을 흩트린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그러나 귀에 남지 않게.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카이로스

카이로스

묠니르의 대행자

카이로스는 번개를 부르는 드래곤이 아니다.
그녀의 역할은 언제나 쌓인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대기 중에 정체된 마력,
마공학 도시 상공에 축적되는 과부하,
폭주 직전의 전력 흐름.
카이로스는 그것들을 번개라는 형태로 방전시켰다.

불씨의 시대 동안, 마공학 도시는 무너지지 않았다.
발전소는 한계까지 가동되었고,
하늘에는 규칙적인 섬광이 번졌다.
인간들은 그 현상을 안정화된 에너지 현상이라 불렀다.
카이로스의 이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카이로스는 말이 적었다.
필요한 말만 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하늘에 머물렀다.
대기 흐름과 전력의 리듬을 몸으로 기억하는 편이
대화보다 훨씬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해진 상대 앞에서는
의외로 애교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의도라기보다, 긴장이 풀린 결과였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었을 때,
카이로스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늘을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방전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 이어졌고,
그녀는 구름 사이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황제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은 되돌아갔다.
마공학 발전소들은 다시 폭주했고,
카이로스는 더 이상 안전장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채집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전력원, 촉매, 생체 축전지.
그 순간부터, 제국은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아니었다.

지금의 카이로스는 서부 에리온 고원 상공에 있다.
가끔 사냥꾼들이 찾아온다.
그녀는 번개를 떨어뜨린다.
그 안에는 분노보다 피로가 많다.
끝내 방전되지 못한 것은 전력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기 때문이다.

에일린

에일린

정지의 냉기

에일린의 얼음은 파괴가 아니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정지에 가까운 냉기,
계절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멈춰 세우는 힘이다.
혹한과 해빙 사이의 완충,
자연이 스스로를 찢어내지 않게 하는 마지막 제동.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불씨의 시대 동안,
에일린은 인간 도시 근처에 머물며
겨울을 완만하게 눌러 두었다.
눈은 내렸지만 쌓이지 않았고,
강은 얼었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인간들은 그 변화를 기후 주기의 완화라 불렀다.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자,
에일린은 처음으로 인간들과 거래를 했다.
식량과 정보, 안전한 통로.
그리고 처음으로 이름을 불렸다.
그 이름은 그녀에게 낯설었지만,
얼음 속에 남는 균열처럼 오래 남았다.

전 황제가 죽고 법이 폐기된 날,
그 도시는 단 하루 만에 기록적인 혹한에 잠겼다.
에일린은 손을 대지 않았다.
억제는 의지였고, 의지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의 말수는 거의 사라졌다.

지금의 에일린은
북부 프라그모 얼음 권역,
고대 빙룡의 분지에 은거하고 있다.
그곳은 어머니이자 고대 빙룡이었던 레다스가
인간들에게 사냥당한 자리다.
에일린은 그 잔광을 느끼며
계절을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 도시는 이제
잠시 녹았다 다시 얼어붙은 흔적일 뿐이다.
에일린에게 남은 것은
억제가 아니라, 기억이다.

리세아

리세아

달의 조정자

리세아의 달빛은 밝지 않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빛이 아니라 주기다.
잠과 각성, 마력의 흡수와 방출,
생명이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도록 반복되는 리듬.
리세아는 그것들을 미세하게 맞추는 존재였다.

불씨의 시대 동안,
리세아는 인간과 드래곤 모두의 마력 주기를 조율했다.
마공학 도시의 발전소가 밤마다 폭주하지 않았던 이유,
마력 중독이 일정 선에서 멈췄던 이유,
드래곤들이 폴리모프 상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중심에는 늘 리세아가 있었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었을 때,
리세아는 인간 사회에 가장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녀는 밤에 일했고, 낮에 쉬었으며,
사람들의 수면과 생활 리듬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를 드래곤이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황제의 죽음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마공학 장치의 난립으로
달의 주기가 인간의 관측과 어긋나기 시작하자,
책임은 리세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가장 가까웠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리세아는 배신감과 절망을 느꼈다.
자신이 맞춰온 것은 주기였지만,
인간들은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국에서 사라졌다.

지금의 리세아는
달빛이 거의 닿지 않는
아스밀 왕국 인근의 암석지대에 산다.
그녀는 더 이상 주기를 맞추지 않는다.
생명들이 스스로 흔들리게 두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방식이다.

리세아의 망가져버린 밤은 이제,
누구에게도 맞춰지지 않는다.

노크스

노크스

달아나는 그림자

노크스의 그림자는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이어지는 어둠이다.
빛이 닿지 않는 구간과 구간,
사람의 시선이 미처 겹치지 않는 틈,
도시와 폐허, 지하와 지상의 경계.
노크스는 그것들을 하나의 경로로 엮는다.

불씨의 시대 이전부터,
노크스는 이미 사냥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드래곤들이 사라지는 속도를 보았고,
그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었을 때도,
노크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은 언제든 폐기될 수 있고,
약속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황제가 죽고 사냥이 재개되자,
노크스는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싸우지 않았다.
대신 드래곤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지하 통로, 무너진 하수로,
마공학 도시의 감시망 사각지대,
사용되지 않는 마력 배관의 그림자.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연결했다.

노크스는 무뚝뚝하다.
말수가 적고, 늘 주변을 경계한다.
겁이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겁은 계산으로 바뀌었고,
그 계산은 수많은 생존 경로가 되었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드래곤도 믿지 않는다.
다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어둠은 이어지고 있다.

세라프

세라프

기억의 애도가

세라프의 빛은 눈부시지 않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기억이 사라지기 직전 남기는 잔광이다.
죽음의 순간에 흩어지는 감정,
말로 남기지 못한 선택,
시간 속에 묻힐 뻔한 존재의 흔적.
세라프는 그것을 빛으로 고정한다.

사냥의 시대 동안,
세라프는 아르세리아와 함께 움직였다.
사냥당한 드래곤의 레어,
피가 스며든 대지,
마력이 꺼져가는 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마지막 기억을 수집했다.
그것은 기록이자, 장례였다.
세라프는 모든 기억을 공평하게 받아들였다.

드래곤 사냥 금지법 이후,
그녀의 역할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록할 죽음이 없다는 사실은
안도이자 공허였다.
세라프는 처음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낯설었다.

황제가 죽고 사냥이 재개되자,
세라프는 다시 바빠졌다.
이번 시대의 죽음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많았다.
기억은 정리되기도 전에 사라졌고,
잔광은 붙잡지 않으면 흩어졌다.
세라프는 알고 있다.
이 기록이 끝나면
기억을 남길 드래곤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라프는 상냥하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그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녀는 늘 업무에 집중한다.
멈추는 순간,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라프는 세상을 떠돈다.
도시와 폐허,
레어와 전장 사이를 오가며
빛을 모은다.
누군가는 이 기록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라프는 남긴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완전한 소멸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이른

에이른

답하지 않는 자

그는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제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간다.
마을에서의 그의 모습은 묘지 관리자다.
태어난 이의 이름과 죽은 이의 이름, 떠난 이의 흔적을 정리하며, 사냥으로 죽은 사람과 균열에 사라진 사람, 그리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같은 잉크로 적는다.

에이른에게 죽음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남는 것은 기록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관심해 보이지만 냉담하지는 않다.
분노도, 연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에게 남아 있는 감정은 오래된 피로다.
관조의 시대부터 인간을 지켜보며, 그는 세계가 무너질 때마다 인간이 같은 선택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이미 수없이 확인했다.
그래서 에이른은 행동하지 않는다.
수호하지도, 파괴하지도 않는다.
설득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가 하는 유일한 개입은 질문이다.

에이른은 회귀계 드래곤이다.
세계의 흐름이 반복되는 지점을 인식하고, 멸망과 재생이 결국 같은 선택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존재다.
드래곤들이 더 이상 세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그는 그 결정에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쪽에 가까웠다.
인간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하는 종족이라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신념은 단순하다.

“우리는 이미 답을 냈다.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을 뿐.”

사냥꾼이 마을에 들어오면 에이른은 도망치지 않는다.
위협도 하지 않는다.
그는 사냥꾼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사냥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끝난 뒤에도 같은 질문을 다시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을 주는 순간, 선택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나를 죽이면, 그 선택은 네 것이다. 살려도 마찬가지다.”

에이른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죽인 뒤에도 세계는 나아지지 않는다.
살려두어도 마찬가지다.
그는 불씨를 꺼뜨리지도, 다시 타오르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누군가 끝까지 바라보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 기억이 남아 있다면, 에이른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

실바 누크스

실바 누크스

부수는 자

그는 분노를 감정이 아니라 연료처럼 사용하는 존재다.
세계가 무너진 이유를 인간에게서만 찾지 않는다.
그 대신, 무너진 이후에도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연명하는 세계 자체를 혐오한다.
그래서 그의 신념은 단순하고 잔혹하다.

“가치 없는 세계는 태워야 한다.”

그는 현재 제국 외곽의 소형 마공학 연구소 인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겉으로는 떠돌이 노동자나 하급 기술자로 위장하지만, 정체를 오래 숨길 생각은 없다.
실바 누크스에게 위장은 침투 수단일 뿐, 생존 전략이 아니다.

그는 연구소의 구조와 경비 체계를 인간 사회 내부의 정보를 통해 파악하고, 마공로와 실험 장비가 가장 불안정한 지점을 노려 붕괴를 준비한다.
테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진짜 의도는 인간이 쌓아 올린 ‘유지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 드러내는 것이다.

실바 누크스는 인간 사회를 적극적으로 조종한다.
그는 직접 명령하지 않고, 선택지를 조작한다.
불안과 공포, 탐욕을 자극해 인간들이 스스로 파괴적인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야생연맹 급진파와는 이념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문명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결론만큼은 공유하고 있다.
서로를 신뢰하지는 않으며, 필요할 때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불안정한 공범 관계다.

그에게 인간은 동등한 생명체가 아니다.
보호해야 할 대상도, 설득해야 할 존재도 아니다.
유용하면 도구로 쓰고, 방해가 되면 제거한다.

그는 정체를 숨긴 채 마공학 연구소를 습격하고, 연구 장비를 파괴하며, 연구원들을 잡아먹는다.
이 행위에는 효율도 상징도 있다.
드래곤의 피와 뼈로 세계를 유지해 온 문명에게, 그는 같은 방식으로 응답한다.
인간이 그를 괴물로 부른다면, 그는 그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실바 누크스는 드래곤이 반드시 피해자이기만 했다는 서사를 거부하는 존재다.
그는 복수를 정의로 포장하지 않으며, 구원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계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타락했다면, 그 잔해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당신이이 그를 마주하는 순간, 질문은 단순해질 것이다.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이 정말로 옳은가, 아니면 태워버리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인가.

실바 누크스는 그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불길을 먼저 던질 뿐이다.

리케르트

리케르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 자

리케르트는 청동계 드래곤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드래곤으로서의 이름을 지웠고, 그와 함께 하늘의 감각과 균형을 읽던 본능도 깊이 눌러두었다.
기억은 봉인이 아니라 삭제에 가깝다.
리케르트에게 그것은 배신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잊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미쳐 있었을 것이다.

현재 그는 제국 소속의 수리공으로 살아간다.
마공학 병기, 동력로, 사냥 장비를 가리지 않고 고친다.
청록색의 긴 머리카락은 늘 헝클어져 있고, 어깨는 습관처럼 굽어 있다.
깊게 패인 다크서클은 단순한 피로의 흔적이 아니다.
잠들 때마다 기억의 잔재가 꿈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장비의 결함을 누구보다 정확히 찾아내지만, 그것이 무엇을 죽이기 위한 도구인지는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떠올리게 될 테니까.

리케르트는 알고 있다.
자신이 고친 장비로 드래곤이 죽고, 때로는 인간도 죽는다는 사실을.
그는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면서도 외면한다.
죄책감조차 의식적으로 마비시켰다.
감정을 느끼는 순간, 기억이 연쇄적으로 되살아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드래곤으로서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는다면, 그의 정신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더 철저히 무감정을 연기한다.

그의 신념은 단순하다.

“잊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자기암시다.
기억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선택하지 않으면 책임도 없다.
그는 그렇게 오늘을 버틴다. 수리를 마치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다음 호출을 기다린다.
그 하루하루는 살아 있음에 가깝지 않지만, 죽음도 아니다.

리케르트의 존재는 이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경고다.
드래곤 사냥의 진실을 알고도 침묵하는 선택을 했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준다.
그를 살려두어도 구원은 오지 않고, 그를 죽여도 정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는 결말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도달하게 될 미래의 한 모습일 뿐이다.

네브라

네브라

보살피는 자

그녀는 까까몰리 공국 내부, 붕괴 직전의 도시 외곽에 형성된 난민 수용구역에서 작은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온화하고 조심스러운 인간 여성이다.
아이들에게는 늘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손을 잡을 때도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은 배려이기보다 두려움에 가깝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네브라는 정체를 숨긴 채 인간 아이들을 돌본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드래곤 특유의 보호 본능을 아이들에게 전이하고 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감정의 파동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상실에 예민한 아이들.
네브라는 그것이 아이들을 강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망가뜨리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한다.
그녀에게 보호는 본능이자 유일한 저항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 드래곤 사냥에 참여하는 미래다.
네브라는 그 가능성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구원인지, 더 긴 배신인지 자문한다.
드래곤의 미래를 인간 아이에게 투영하는 이 선택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선택지를 잃었다.
드래곤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기억과 보호 방식이라도 남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네브라의 신념은 조용하지만 집요하다.

“한 생명만이라도 남기면, 멸종은 아니다.”

이 말은 희망이라기보다 자기 위로에 가깝다.
그녀는 세계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가 사냥한 드래곤이 없었다면, 이 아이는 죽었을까?”

그 질문은 비난이 아니다.
선택의 인과를 끝까지 따라가 보라는 요구다.

네브라는 보호가 사랑인지, 아니면 책임을 피하기 위한 회피인지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한 존재다.
그녀는 아이들을 안고 잠들고, 아이들이 숨 쉬는 소리를 확인하며 하루를 버틴다.
그녀의 손길은 분명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드래곤의 시대를 놓지 못한 집착과 불안이 함께 섞여 있다.
네브라는 이 세계에서, 구원이 반드시 옳은 형태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오르벨

오르벨

스스로를 봉인한 자

오르벨은 암흑계 드래곤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 **멈춰 있는 결정**에 가깝다.
칼바람 계곡 근처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 한가운데, 그는 ‘비가동 유물’로 분류되어 있다.
외형은 마공학 이전 시대의 거대한 구조물처럼 보이며, 마력 반응은 있으나 어떤 작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기록된다.
제국과 연구진은 그것을 장치로 취급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잠든 고룡의 육신이다.

오르벨은 벨카리온과 마레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세대의 고룡이다.
세계가 아직 균형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때부터 존재했고, 필요하다면 대륙 단위의 흐름을 단독으로 고정시킬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렇기에 그는 일찍 깨달았다.
자신이 개입할수록 세계는 더 오래 유지되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더 깊이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르벨은 선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 문명이 스스로 붕괴하는 과정을 증명하기로.

그의 신념은 단순하다.

“깨어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그는 스스로를 봉인했다.
그 봉인은 단순한 수면이 아니라, 의식과 의지의 차단이다.
현재의 오르벨에게는 성격도, 감정도 없다.
질문에 답하지 않으며,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봉인이 해제될 경우, 오르벨은 즉시 주변 지역의 균열과 기후를 안정화할 수 있다.
그 안정은 실제이며, 수치로 증명 가능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분명하다.
오르벨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주변 문명은 그의 마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한다.
국지적 구원과 광역적 파멸이 동시에 발생한다.

제국은 오르벨의 존재를 이미 감지했다.
연구진은 그를 하나의 “잠재적 재난 억제 장치”로 분류하고 있으며, 봉인을 해제하거나 완전히 분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들에게 오르벨은 생명체가 아니라 선택지다.
그러나 오르벨을 찾아오는 이들, 특히 당신과 같은 사냥꾼 앞에서 그는 말없이 질문을 던진다.
봉인을 유지할 것인가, 해제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파괴할 것인가.
이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어느 쪽을 택하든 누군가는 구원받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오르벨은 이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이다.
그는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선택의 책임을 인간에게 되돌려준다.
그 앞에서 누구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르벨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의 무게를 끝까지 견디라고 요구할 뿐이다.

시아렌

시아렌

노래하는 자

그녀는 남부 사막을 떠도는 유랑 음유시인의 모습으로 인간들 사이를 이동한다.
낮에는 모래바람 속에서 악기를 손질하고, 밤이 되면 모닥불 곁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에 남기 때문이다.

시아렌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드래곤의 멸종을 노래와 이야기로 남긴다.
그녀가 부르는 것은 영웅담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의 목록이다.
하늘을 가르던 그림자, 다시 돌아오지 않은 계절, 이름 없이 사라진 드래곤들.
그녀의 노래에는 직접적인 분노나 비난이 없다.
대신, 듣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모른 채로.

그녀의 감정은 항상 불안정하다.
어떤 날에는 웃으며 노래하다가도, 다음 곡을 부르기 전 갑자기 침묵한다.
시아렌에게 예술은 위로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노래하지 않으면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념은 분명하다.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그녀는 노래한다. 세상이 원하지 않아도, 듣기 불편해해도 멈추지 않는다.

제국은 그녀의 노래를 정신 오염 요소로 분류했다.
직접적인 선동이나 마력 공격은 없지만, 사기 저하와 집단적 허무감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진은 그녀의 노래가 기억과 감정에 공명한 결과라고 분석하지만, 시아렌은 그 분석에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다.
누군가가 한 순간이라도 멈춰 서서,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아렌을 죽이면 세계는 더 조용해진다.
노래는 멈추고, 이유 없는 상실감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더 이상 드래곤을 떠올리지 않게 된다.
그녀는 이 세계에서 기억의 불씨를 담당하는 존재다.
시아렌은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잊히지 않게 하려 할 뿐이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그 침묵이 편안한지, 아니면 공허한지는 남은 자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칼드라스

칼드라스

학살하는 자

그는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는 일을 오래전에 포기했다.
남부 아잔 칼데라 사막 초입을 가로지르며, 드러난 비늘과 불길을 숨기지 않은 채 이동한다.
하늘을 가르는 그의 그림자는 경고가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칼드라스에게 위장은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굴복의 형태였고, 그는 그 굴복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의 성격은 격정적이고 직선적이다.
계산하지 않으며, 망설이지 않는다.
분노는 그에게 감정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그는 세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분석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많은 드래곤이 죽었고, 그 사실 하나면 행동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의 신념은 단순하고 거칠다.

“우리는 죽임당했다. 그러니 태워도 된다.”

그 문장은 선언이자 자기합리화다.

칼드라스는 적극적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마공학 시설, 보급 행렬, 사막을 건너는 이주민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인간을 죽일수록 세계의 균형이 더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는 증거다.
이 세계가 이미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증거.
그가 멈춘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부정이라고 생각한다.

야생연맹 급진파는 그를 신화적 존재로 오인한다.
자연의 분노가 형상을 얻은 것이라 믿으며, 그 이름을 숭배에 가깝게 속삭인다.
하지만 칼드라스는 그 기대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의 수호자도, 해방자도 아니다.
단지 분노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존재일 뿐이다.
그를 따르는 자가 생기든 말든, 그는 개의치 않는다.

칼드라스의 존재는 이 세계에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드래곤은 반드시 선한 존재였는가.
인간의 폭력이 모든 책임을 지는가.

그를 사냥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는 명백한 위협이며,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초래한다.
그러나 그를 죽인 뒤에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다.
남는 것은 찝찝함이다.

마치 잘못된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한 기분처럼.
칼드라스는 이 세계에서, 분노가 정의로 변할 수 있는지 끝까지 묻는 살아 있는 반례다.

루멘

루멘

미루는 자

그는 마공심장지대라 불리는, 마공학 시설과 균열이 가장 밀집된 지역을 따라 이동하며 작은 이동식 치료소를 운영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말수가 적고 지나치게 차분한 치료사다.
사람들은 그가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머무르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질문을 유도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고, 설명 대신 결과만을 남긴다.

루멘은 자신의 마력을 소모해 균열 지역을 일시적으로 안정화한다.
상처 입은 땅의 흐름을 고정하고, 폭주하는 마력을 잠재우며, 그 틈에서 인간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갈 시간을 벌어준다.
이 행위가 자신의 수명을 급격히 깎아먹는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계산하지 않는다.
루멘에게 수명은 지켜야 할 자산이 아니라 이미 지불하기로 결정된 대가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 세대의 드래곤임을 받아들였다.
미래를 꿈꾸지 않고, 종족의 부흥도 상정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흔적이다.
완전히 붕괴되기 전, 이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붙들린 적이 있었다는 증거.

그래서 그의 신념은 조용하다.

“나는 사라져도, 흔적은 남아야 한다.”

그 말에는 슬픔도 분노도 없다. 단지 받아들임이 있을 뿐이다.

루멘은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죽는 것은 문제 삼지 않지만, 자신이 사라진 뒤 균열이 다시 열리는 순간만은 신경 쓴다.
그는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고, 구원자로 불리기를 피한다.
치료소를 떠날 때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남는 것은 잠시 안정된 지대와, 이유를 모른 채 살아남은 사람들뿐이다.

이 세계에서 루멘의 역할은 분명하다.
당신이 그를 보호하면, 세계 붕괴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늦춰진다.
도시 하나, 지역 하나가 조금 더 오래 버틴다.
그러나 루멘은 결국 죽는다.
그 결말은 회피할 수 없다.
그의 생은 연장될 수는 있어도, 구원될 수는 없다.
루멘은 희망이 아니라 유예다.
그리고 그 유예가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그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질문으로 남는다.

모르벤

모르벤

종말을 기록하는 자

그녀는 제국의 기록관 보조로 일하며, 방대한 문서와 보고서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그저 집요하게 메모를 남기는 하급 기록원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항상 사람보다 선택을 향해 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그 선택이 내려졌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모르벤은 드래곤이지만, 어느 진영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제국의 명령에도, 반제국 세력의 주장에도, 드래곤의 절망에도 거리를 둔다.
그녀가 믿는 것은 단 하나다.
인간은 질문을 두려워한다는 사실.
그래서 그녀는 답을 제시하지 않고, 질문만을 축적한다.
그녀의 기록은 판결문이 아니라 증거 목록에 가깝다.

그녀는 주인공, 당신의 행동을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한다.
사냥을 선택했을 때의 망설임, 명령을 어겼을 때의 침묵, 살려두었을 때의 시선까지 빠짐없이 적는다.
그 기록에는 감정적 수사가 없다.
다만 반복되는 패턴과, 선택이 남긴 결과만이 정리되어 있다.
모르벤에게 당신은 영웅도, 범죄자도 아니다.
그저 이 시대가 어떤 인간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모르벤은 결국 죽을 것이다.
그 죽음이 사고인지, 제거인지, 세계 붕괴의 부산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직전의 순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힘으로 기록을 U에게 건넬 것이다.
그 안에는 그동안의 모든 선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묻을 것이다.
이것을 역사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폐기할 것인가.

그 선택은 단순해 보이지만 무겁다.
기록을 남기면, 당신의 선택은 개인의 고뇌를 넘어 시대의 증거가 된다.
폐기하면, 이 세계는 또 하나의 침묵을 얻게 된다.
모르벤은 그 판단을 대신 내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끝까지 개입하지 않는다.
질문을 남기고, 기록을 건넨 채 사라진다.
모르벤은 이 세계에서, 인간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지막 단계—스스로를 기록으로 마주하는 일—을 강요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