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류
마력은 하늘·대지·생명·죽음·기억·감정을 따라 흐른다. 마법은 무에서 힘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흐름의 방향과 농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엘다르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라기보다 모든 현상과 생명이 맥류의 흐름 위에 놓인 세계다. 힘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모든 개입에는 흔적과 비용이 남는다.
마력은 하늘·대지·생명·죽음·기억·감정을 따라 흐른다. 마법은 무에서 힘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흐름의 방향과 농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불·물·바람·냉기·땅·빛·어둠·별·물리·죽음이 세계를 움직이는 열 가지 방식이다. ‘생명’은 독립 원소가 아니라 이 열 원소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름을 가지고, 과거를 기억하고, 약속을 맺고,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다면 지성종으로 본다. 외형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아와 기억이 경계의 핵심이다.
아직 드래곤 사냥과 생명의 산업화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 그러나 거인 유해의 채굴, 트롤 생체실험, 정령 강제봉인처럼 훗날의 파국을 가능하게 할 사고는 이미 존재한다.
“기록은 하나의 정답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충돌하는 증언이 지워지지 않게 보존하는 일이다.”
아래 분류는 생김새가 아니라 자아·기억·약속·문화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한다. 악마는 엘다르 태생의 종족이 아니라 외차원에서 유입된 지성 존재다.
짧은 수명 대신 빠른 선택과 적응을 택한다. 특정 원소에 고정되지 않고 거의 모든 문화·마법 체계에 적응하며, 부족한 것을 기술과 조직으로 보완한다.
500~700년을 사는 장수종. 주변 맥류에 의지를 맞추는 조율술에 능하며, 자연을 온화함이 아닌 순환 전체로 이해한다.
죽음 원소와 안정적으로 결합해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자아와 기억을 유지한다. 욕망은 희미해지지만 약속과 기억은 오래 남는다.
세계의 자연·맥류 균형을 조율하는 고대 생명. 생명체의 전쟁·정치·구조·생사에는 개입하지 않으며 자신이 죽더라도 비간섭 원칙을 지킨다.
몸을 나비 크기로 접을 수 있는 지성종. 이름과 약속을 맥류에 남는 행위로 여기며 감정이 빠르고 강하게 외형에 드러난다.
수명이 천 년을 넘는 고대종. 맥류를 안정시키기 위해 땅과 강의 형태를 붙잡았다고 전해지며 죽으면 흙·광맥·산맥으로 돌아간다.
길과 여관, 시장을 고향처럼 여기는 작은 여행자들. 역사와 계약, 길의 정보를 노래와 이야기로 기억한다.
돌의 진동과 압력의 흔적을 읽는 장인 종족. 혈통보다 공방과 직업 계보를 중시하며 만든 물건 자체를 역사적 증언으로 여긴다.
다양한 동물형 맥류 혈통을 묶은 통칭. 귀·꼬리·냄새·자세도 중요한 의사소통이며 대륙 전역에서 여러 종족과 섞여 살아간다.
힘의 크기보다 힘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중시한다. 남부에서는 인간을 ‘작은 형제’라 부르며 같은 시련을 통과한 동료로 여긴다.
도시의 좁은 길과 지붕, 하수도를 자유롭게 누비는 민첩한 종족. 소유권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가’에 더 가깝게 이해한다.
세상의 규칙과 관계를 조건부로 비트는 도술을 사용한다. 내기와 잔치를 즐기며 공정한 규칙을 중시하지만 그 기준은 종종 인간과 다르다.
근원목과 생명을 공유하는 식물형 지성종. 개별 생명보다 숲 전체를 우선하며 엘프가 외교에서 자신들을 대신 말하는 문제로 갈등한다.
원소가 강하게 모여 자아를 얻은 존재. 이름을 얻고 계약과 선택을 이해하는 정령은 지성종으로 인정받는다.
거대한 체구와 재생핵을 지닌 종족. 생각과 말이 느릴 뿐 지능이 낮지 않으며 한번 한 약속을 오래 기억하고 지킨다.
외골격과 더듬이·날개 등의 특징을 지닌 여러 계통의 공동체. 충분히 관찰한 뒤 답하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분노와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즉시 표현하며 문제가 끝나면 감정도 빠르게 끝낸다. 같은 시기에 깨어난 이들을 한 둥지 형제로 여긴다.
지구에서 축적된 개념이 자아를 얻어 엘다르에 유입된 불멸의 외차원 존재. 선악보다 자신이 연결된 개념의 극적인 실현에 끌린다.
흡혈귀·호문클루스·서큐버스·반인반마 등을 묶는 사회적 분류. 악마와 달리 엘다르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죽을 수 있다.
십 년마다 한 번 선발되어 전 대륙을 순회하고 각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기록해 귀환 후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공유하는 감시자이자 기록자들의 원정대.
승자가 패자의 이야기를 지우지 못하도록, 국가·교단·상단·군대가 자신들의 힘으로 세계를 붕괴시킬 선을 넘지 않는지 서로 감시하도록 만들어졌다. 군대나 수사기관이 아니라 관찰·질문·증언·기록·공개로 권력을 견제한다.
지금 사람들은 일곱 깃발 원정대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부르지.
틀린 말은 아니야.
다만 아주 예쁘게 줄인 말일 뿐.
처음부터 일곱 나라가 서로를 믿어서 만든 조직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정반대야.
일곱 깃발 원정대는, 일곱 개의 깃발이 서로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졌어.
약 백 년 전, 엘다르의 일곱 나라는 동시에 여러 문제를 겪고 있었어.
남부에서는 가뭄이 길어져 안발룽의 부족들이 식량과 물을 찾아 이동했고,
델피로와 세레이온의 변경에서는 그 이동을 경계하기 시작했지.
레흐니티에서는 중앙 맥류의 이상과 외부 물자의 검역 문제가 겹쳤고,
프라그모에서는 아르카대하 상류의 빙하 유출량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보고가 올라왔어.
까까몰리의 상단은 위험해진 항로의 운임을 올렸고,
리벨리온에서는 대륙 여러 지역의 마력 흐름을 비교해야 한다며 자료 공개를 요구했지.
하나씩 놓고 보면 전부 이유가 있었어.
그게 문제였지.
델피로 기록에는 이렇게 적혔어.
“안발룽 무장집단이 변경을 넘어 곡물을 탈취하고 있다.”
사실이야.
실제로 약탈은 있었어.
그런데 그 기록만 보면 그 전에 몇 달 동안 이어진 식량 부족과 실패한 교섭은 잘 보이지 않았지.
안발룽 쪽에서는 반대로 기록했어.
“북부와 동부의 국가들이 식량을 통제해 남부 부족을 굶기고 있다.”
이것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어.
검문도 있었고 수출 제한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곱 국가가 함께 남부를 굶기기로 합의했다는 증거는 없었지.
세레이온은 국경 주민을 지키기 위해 성기사대를 증원했다고 기록했고,
안발룽에서는 그것을 침공 준비라고 읽었어.
레흐니티는 숲과 맥류를 보호하기 위해 통행을 제한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대륙 중앙의 길을 정치적으로 막는다고 의심했지.
까까몰리는 위험한 항로의 가격을 올렸어.
상단 기록으로는 정상적인 위험비용이었지만,
물자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사실상의 봉쇄처럼 보였고.
프라그모의 비축은 북부의 불안정한 수운에 대비한 것이었지만,
델피로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동안 곡물을 움켜쥔다고 봤어.
리벨리온이 맥류 정보를 요구하자 이번에는 다른 나라들이 생각했지.
“왜 저들이 우리 지역의 마력자료까지 필요로 하지?”
재미있는 건 말이야.
어느 나라의 기록에도 완전한 거짓말은 거의 없었다는 거야.
모두가 사실을 적었어.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사실을.
그러다 작은 국경 충돌 하나가 터졌어.
지금도 누가 먼저 무기를 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어.
한쪽 생존자는 상대가 먼저 활을 겨눴다고 했고,
반대편 생존자는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했을 뿐이라고 했지.
근처 상인은 경고사격을 먼저 들었다고 증언했어.
다른 주민은 비명이 먼저였다고 했고.
철수명령을 들고 달리던 전령도 있었지만,
그 명령이 교전 전에 도착했는지 뒤에 도착했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어.
사망자 숫자만 보면 대륙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아니었지.
그런데 이미 모두가 상대를 의심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일곱 나라가 똑같은 말을 시작했어.
“보았는가. 저들이 먼저 움직였다.”
델피로는 변경군을 늘렸고,
안발룽은 부족 전력을 집결시켰고,
세레이온은 성기사 전력을 움직였어.
레흐니티는 통행을 더 엄격하게 제한했고,
까까몰리의 상선에는 호위가 늘었어.
프라그모도 북부 이동을 감시했고,
리벨리온 역시 흑요장벽의 경계를 강화했지.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두가 같은 말을 했어.
“우리는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아무도 다른 여섯 나라가 하는 똑같은 말을 믿지 않았다는 거야.
그때 불멸기록원에는 일곱 나라에서 보내온 기록이 차례로 도착했어.
우리는 그것들을 한 자리에 놓고 읽었지.
아주 이상한 결과가 나왔어.
델피로의 기록만 읽으면 델피로가 피해자였어.
안발룽의 기록만 읽으면 안발룽이 피해자였고.
세레이온의 기록만 보면 병력 증원은 당연한 방어였어.
레흐니티 기록만 보면 숲을 닫지 않는 쪽이 무책임했고,
까까몰리 기록만 보면 운임 인상은 합리적이었지.
프라그모의 비축도 타당했고,
리벨리온의 정보 요구 역시 그들의 관측자료만 보면 필요했어.
일곱 기록.
일곱 개의 진실.
그런데 그 일곱 개를 한꺼번에 놓으면,
어느 것도 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 설명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그 사건을 개인적으로 「일곱 개의 진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진실이 일곱 개라서가 아니야.
누구나 자기 조각 하나를 진실 전체라고 부르고 있었으니까.
그때 불멸기록원에서 새로운 제안이 나왔어.
어느 나라 기록이 옳은지 프라그모가 판결하지 말자.
새로운 공식 진실을 하나 만들어 일곱 나라 위에 올려놓지도 말자.
대신 직접 가자.
군인에게 묻고.
주민에게 묻고.
상인에게 묻고.
성직자에게 묻고.
피난민에게 묻고.
관리에게 묻고.
서로 모순되는 증언이라도 지우지 말고 기록하자.
“A는 이렇게 증언했다.”
“B는 이를 부인했다.”
“현장에서 확인된 사실은 여기까지다.”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적는 거야.
별거 아닌 것 같지?
기록하는 사람한테는 꽤 어려운 일이야.
사람은 빈칸을 보면 채우고 싶어하거든.
특히 자기 생각으로.
당연히 다른 나라들이 곧바로 동의한 건 아니야.
델피로는 물었어.
“누가 그 기록을 관리하는가?”
안발룽은 물었지.
“프라그모 사람이 쓴 기록을 왜 믿어야 하지?”
레흐니티는 숲 내부의 정보가 외부 정치에 이용되는 것을 걱정했고,
세레이온에서도 교단의 기록과 증언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를 두고 논쟁했어.
까까몰리는 계약과 항로 정보의 공개 범위를 문제 삼았고.
리벨리온에서는 아주 괜찮은 질문을 하나 했지.
“기록을 만들어놓고 프라그모만 가지고 있으면 결국 새로운 정보독점 아닌가?”
맞는 말이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원칙이 만들어졌지.
완성된 원정 기록은 어느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프라그모도 먼저 독점하지 않는다.
왕에게 비밀리에 팔지 않는다.
상단이 돈을 더 낸다고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나라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공개를 늦추지도 않는다.
귀환 후 정리된 기록은
같은 내용으로, 같은 날, 일곱 국가 모두에게 공개한다.
누구도 기록을 자기 깃발 아래 숨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일곱 깃발’이라는 이름도 그때 생겼어.
창설 협정이 맺어질 때 일곱 국가는 각자의 깃발을 하나씩 보냈어.
원정대를 지휘하라는 뜻이 아니었어.
오히려 반대였지.
일곱 깃발을 모두 세워놓고, 어느 하나의 깃발 아래에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
그래서 일곱 깃발은 구성원 숫자를 의미하지 않아.
원정대에 반드시 일곱 명이 있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매번 일곱 나라가 한 명씩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뜻도 아니야.
어떤 나라는 사람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그 나라의 깃발은 치우지 않아.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과 기록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니까.
일곱 깃발의 진짜 뜻은 단순해.
어느 나라도 기록 앞에서 특별대우를 받지 않는다.
어느 나라도 기록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첫 원정이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별 기대를 안 했어.
당연하지.
종이와 붓을 들고 대륙을 돌아다닌다고 전쟁이 사라질 것 같아?
실제로도 안 사라졌어.
일곱 깃발 원정대는 군대가 아니야.
전쟁을 강제로 멈출 권한도 없어.
범인을 잡는 수사기관도 아니고,
왕을 심판하는 재판소도 아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보는 것.
묻는 것.
증언을 모으는 것.
확인하는 것.
그리고 남기는 것.
처음 몇 년 동안은 그게 무슨 힘이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달라지더라.
어느 지방관이 피난민 숫자를 줄여 보고하려다가 멈췄어.
부하가 말했거든.
“이번 원정대가 이 지역을 지나갑니다.”
어느 군부대가 민간인 피해를 다른 집단의 소행으로 돌리려 했어.
생존자가 말했지.
“그 사람들에게도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상단은 위험한 항로를 안전하다고 광고하려다가 계약서를 고쳤어.
누군가 이런 말을 했으니까.
“십 년 뒤에도 그 기록 남아 있을 텐데?”
우리가 처벌한 게 아니야.
잡아간 것도 아니고.
그냥 숨기는 비용이 비싸진 거지.
자기 나라 사람 몇 명한테만 거짓말하면 끝날 일이 아니게 됐으니까.
다른 여섯 나라가 보고.
다음 세대가 보고.
자기 후임도 보게 되니까.
물론 우리의 기록이 언제나 평화를 만든 것은 아니야.
어떤 기록은 오히려 싸움을 키웠어.
자기 나라가 저지른 일을 외국까지 알게 됐다고 화내는 사람도 있었고,
상대편 증언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편파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
그럴 때는 지우지 않았어.
누군가 말하면 적었고.
다른 사람이 부인하면 그것도 적었어.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으면 그것 역시 기록했지.
사실과 증언을 구분하고.
증언과 해석을 구분하고.
해석과 변명을 구분한다.
그리고 구분하지 못한 것은 못 했다고 쓴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중립이야.
아무 생각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야.
왜 십 년마다 다시 보내느냐고?
기록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오래되기 시작하니까.
십 년이면 왕이 바뀔 수 있어.
지방관이 바뀌고,
국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기술이 생기고,
옛 피해자가 권력을 가질 수도 있지.
개혁을 약속했던 사람이 약속을 지켰는지도 봐야 하고.
예전에 옳다고 적었던 판단이 지금도 옳은지도 다시 봐야 해.
그래서 다음 원정대는 이전 원정대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아.
구성원이 바뀌고,
시선도 바뀌어.
이전 기록을 성전처럼 들고 확인하러 가는 게 아니야.
이전 기록까지 다시 의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거지.
그렇게 백 년 동안 열 번의 원정이 출발했어.
매번 다른 얼굴들이 이 기록원에서 지도와 빈 장부를 받아 들고 나갔지.
어떤 사람은 돌아왔고.
어떤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출발할 때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돌아왔어.
나는 그걸 전부 봤고.
요즘은 사람들이 일곱 깃발 원정대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부르더라.
듣기 좋지.
틀리다고 할 생각은 없어.
다만 그 이유를 착각하면 곤란해.
원정대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두가 서로를 사랑해서가 아니야.
자기들이 한 일이 다른 나라와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알려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기록이 군대를 막아주지는 않아.
기록이 굶주린 사람한테 밥을 주지도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건 더더욱 못 하지.
그래도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기록이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해.
하지만 그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려는 사람과는 싸울 수 있어.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싸움에 검은 필요 없어.
한 사람이 말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지우려고 하면,
지워진 이야기를 다시 옆에 놓으면 돼.
어느 나라가 자기 기록만을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 옆에 다른 증언을 펼친다.
그것 때문에 일곱 깃발 원정대가 만들어졌어.
대륙에 하나의 완벽한 진실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야.
누군가 하나의 진실만 남기려고 할 때,
지워질 다른 증언들이 끝까지 함께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 기록원장 에리두 김, 후대의 일곱 깃발 원정대원들을 위한 주석
중립은 아무 의견도 갖지 않는 게 아니야.
사실과 증언, 해석과 변명을 구분해.
네가 틀릴 가능성도 숨기지 말고.
그리고 누구도 기록을 자기 나라의 소유물로 만들게 두지 마.
아, 그리고 일곱 깃발이라고 일곱 명을 채워야 하는 건 아니니까 사람 숫자 세다가 보고서 첫 장부터 틀리지 말고.
깃발은 일곱이야.
너희 편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느 하나만 너희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기록관은 특정 국가에 깊이 소속되지 않은 인물이 맡는다. 사실·증언·해석·변명을 구분하고 동료의 조국에 불리한 사실도 누락하지 않아야 한다. 완전한 중립이 아니라 누구도 기록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공정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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